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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ir own meaning

박솔뫼, 겨울의 눈빛



박솔뫼, 겨울의 눈빛, 문학과 지성사

2011-15년까지 계간지, 단행본에 수록한 작품들을 모아 소설집으로 출간했다.

스위밍꿀 이라는 1인 출판사 대표 황예인씨의 블로그를 이웃 블로그로 추가해 두는 바람에 스위밍꿀의 신작 소식 '사랑하는 개' 소식을 전해 듣던 중 박솔뫼 작가에 관해 알게 되었고 순전히 호기심으로 구간 '겨울의 눈빛'을 찾아보게 되었다.

솔뫼 라는 이름은 본명일까, 저자의 이름에서 솔솔 불어오는 산바람이 생각난다는 걸 본인은 알까
황예인씨의 블로그에선 학창시절에 소르뫼 라는 별명을 가진 적이 있었다는 문장을 읽은 기억이 나는데

나는 주변인에게서 별명으로 불리워진 경험이 많지 않아서 그나마 고등학교 시절의 추억만이 유일한 것 같다. 국민학교-초등학교, 중학교 시절엔 친구를 별명으로 부르는 경험은 겪지 못했고 고등학교 다니던 시절 아주 밝은 친구를 만나며 내게도 기회가 생겼다. 별명은 미자였다. 이유는 단순히 미자, 영자, 숙자, 처럼 그 시절 '-자'자 돌림의 이름들은 그저 어미에 -자 를 붙이면 재밌어진다는 것이 이유였는데(얼마나 순수한가) 나머지 이름들의 소유주들이 분명했고 남아있던 미자의 캐릭터에 내가 잘 어울린다는 것이 말도 안되는 이유로 이름과 상관 없었지만 난 미자로 불리게 된다.

겨울의 눈빛 책날개에 너무나도 정직하게 촬영된 저자의 사진은 내게 이유모를 신뢰감을 생성시키고 있었는데, 굳이 이유를 찾아내자면 무척 믿음직스러웠다. 자주 만나는 친구에게 그렇게 말했더니 그는 달리 공감하지 못했고 무엇이 믿음직스러운지 더 설명하라 했다. 나는 필터나 특정 색감 속에 자신의 형체를 그럴싸하게 숨기지 않고, 꾸밈없이 드러낸 모습이 믿음직스러움의 포인트라고 말했고 덧붙여 우리의 기억 속 고등학교 2학년 무렵의 교실에서 앞에서 세번째 자리 귀퉁이 쯤에 앉은 말수가 적고 고집스러운 단발머리의 학생이 떠오른다고도 말했다. 비관적인 분위기는 아니다. 긴머리도 얼마든지 고집스러울 수 있으며 고집스럽다는 말이 단발머리와 어울린다는 건 어디까지나 내 생각이다.

저자는 필터나 색감을 벗어나 자신의 순수함을 어필하고 싶었던 걸까, 책을 읽기도 전에 책날개의 저자사진부터 여간 신경쓰이는 것이 아니었다.

무덥기만 한 여름날, 저녁이 되어서야 틀기 시작한 에어컨 바람 아래에서 이틀정도 시간을 들여 다 읽었고 기억에 남는 단편은 '수영장', '폐서회의 친구들' 이었다.

 

<수영장>

야영장에서 청소와 사무를 보는 다미와 그 주변인의 일상이야기

- 첨벙첨벙 헤엄치는 여자애, 아마도 열두 살이거나 열세 살, 이애정

- 방학중인 대학생

- 이애정의 남동생, 아주 말랐고 안경을 썼고 까무잡잡함

- 이민구, 서른 둘, 전두환 정권의 대학생 같은 느낌으로 교회 기도회의 사무 처리를 하고 있음

 

p.191/ 나는 한 번 무엇을 먹으면 질릴 때까지 먹는 습관이 있고 실은 질려서 관두는 것은 아니고 너무 한다 싶어서 관두는 것이다.

p.192/ 교회를 떠난 사람들은 모여 더 작은 교회를 만들었고 더 작은 교회는 곧 더 큰 교회가 되기도 했다. 

p.197/ 이애정의 어머니는 5년 전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고 이애정은 고모와 할머니와 아버지와 남동생과 살고 있다. 이애정의 어머니는 교회 신자였는데 해마다 기도회에 열심히 참가하였다고 한다. 이상한 일이지만 신자들은 주변 사람이 죽으면 그 사람에게 신의 이야기를 전하지 못한 것을 깊이 안타까워하지만 신자들이 죽는다고 주변 사람들이 아 그의 말을 한 번은 믿어줄 걸 하고 슬퍼하는 것은 아니다. 조금은 슬플지 몰라도 말이다. 어쩌면 마음 깊은 곳에서는 양쪽 다 그것을 이유로 슬퍼하거나 애통해 하지는 않을 것이다.

p.199/ 도시에서 가장 시끄러운 사람들은 종교를 가진 사람들이었는데

p.200/ 빈집의 밥상에 숟가락이 어떻게 마치 제사상처럼 꽃혀 있고 다른 숟가락은 바닥에 나뒹굴었는데 그 옆에 사람 둘이 있었어요.

 

<폐서회의 친구들>

틀어진 관계의 친구가 신간을 내면서 열게 된 낭독회에 주인공이 초대받는다. 그러나 친구의 강제로 좌담 행사에 가담하라는 제의를 받지만 모든것이 너무 갑작스러운 주인공은 거절한다. [당신의 민주주의를 향한/ 고귀한 마음을 기리며/ 당신의 글과 그것의 향함은/ 올곧고 확실하다] 자신의 글 중 어디가 민주주의를 나타내는지 생각해 본 적도 없는 주인공은 오히려 민주주의가 비웃음의 대상이 되어버린 것 같다는 상념에 잠긴다. 2부의 좌담이 흥미로울 것 같아 그 친구에게 낭독회에는 참여만 하겠다 전하자 '응' 이라는 단답형 대답이 돌아온다.

 

p.214/ 가을이라 그런 행사는 무엇이라도 환영받는지 티셔츠를 입은 작가들이 아무 이야기라도 하는 행사에도 문화를 담당하는 기관과 어째서인지 외국의 한국문화원과 한국의 외국문화원과 몇 개의 출판사가 돈을 내어준다. 그보다 더 어째서인가 알 수 없지만 하는 마음이 들게 하는 것은 2부의 행사였는데 그 행사는 폐서회라는 행사로 책을 찢고 더럽히고 태우는 일의 의의를 서로 나누고 이야기를 주고받고 그러다가 결국에는 책을 되도록 많은 책을 없애는 행사였다. ... ... 나는 폐서회는 못 하겠는데 어려운 책을 못 읽고 어려운 말을 들어도 이해가 잘 안 된다. 그중 한 사람은 박물관장의 딸로 5개 국어에 능한 것으로 알려진 사람이었는데 그 사람은 언제부터 자신이 책을 찢기 시작했는가 책을 찢고 버리는 것의 의미에 대한 개인적 고백에서 문학작품 속에 등장하는 폐서회의 친구들에 대해 말한다고 씌어져 있었다.

p.215/ 역시 기가 죽었다. 굳이 책을 찢고 싶지는 않았다. 뒤숭숭한 기분으로 밤 산책을 나섰는데 어느 아줌마 팔에 안겨 있는 흰 개가 나를 보고 미친 것처럼 짖었다. 왈왈 멍멍 컹컹 이런 것이 아니라 어디가 아픈데 나를 보니 더 아픈 것인지 목에서 고통스러운 소리를 내며 케케 하는 소리를 내며 짖고 있었다. 나를 향해서 소리 지르고 있었다 케케 케케. 나는 또 기가 죽었지만 개가 정말로 아픈 것 같아 개가 아픈가 보다 개가 아픈가 봐 개가 어디가 아픈가 개가 들으라고 개 주인이 들으라고 계속 말하며 걸었다. 그렇게 집 주변을 걷다가 한 시간쯤 후 우유를 마시며 집에 들어가려고 하는데 혹시 아까 그 개는 계속 거기 있나 멈칫멈칫 주위를 살피며 반 발자국씩 걸음을 옮겼는데 아까 봤던 흰 개는 보이지 않았고 나는 속으로 설마 사라져버린 것은 아니겠지 그저 집에 돌아간 것이겠지 그것을 또 누가 들으라고 중얼중얼 골목이 들으라고 중얼거리며 돌아왔다.

주인공은 낭독회에 가서 조명래 라는 이름과 어울리는 얼굴의 중얼중얼을 듣게 된다. 조명래가 자신의 외삼촌에 대해 중얼거리는 이야기를 마치 40년간 한국땅을 밟지 않은 재미교포 할머니가 할 법한 말이나, 1960년대 서독에 간호사로 파견되었던 사람이 카메라 앞에서 인터뷰 할 때처럼 고풍스럽고 정답게 여긴다. 그 중얼중얼을 듣다가 자연스레 조명래는 주인공의 글 속 민주주의에 대해 이야기를 시작하고 폐서회는 책을 태우기 위한 모임이라기보다 모래가 준비되어 있는 공간이었다. 주인공은 조명래를 화나게 하지 않았고 연락처를 받지도 않았다. 단지 모르는 것은 폐서회의 친구들인 모르는 사람들일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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